한 학생의 서류가 있다. 경영학과를 목표로, 경제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관련 독서 목록은 완벽하며, 모의 주식 투자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 모든 과목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은 '경영학'이라는 키워드로 수렴한다. 누가 봐도 잘 준비된 학생의 기록이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의 눈에는 이 완벽한 포트폴리오가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너무 정교하게 조립된 장난감처럼, 학생 개인의 고유한 지적 고뇌와 탐구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허함의 근원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붙잡고 있는 낡은 패러다임, '전공 적합성'이라는 강박에
내신 1.0이라는 신화의 종언
강남의 한 입시 컨설팅 오피스. 벽면을 가득 채운 명문대 합격증서 아래, 한 학부모가 아이의 완벽한 1.0 내신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쉽사리 미소 짓지 못한다. 성적표의 모든 칸은 숫자 '1'로 채워져 있지만, 그가 선택한 과목들은 소위 '안전한' 길을 따라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강생 수가 많아 등급 확보가 용이한 과목들, 깊이 있는 탐구를 요구하는 심화 과목이나 실험 비중이 높은 과학 과목 대신, 암기만으로 해결 가능한 과목들로 채워진 포트폴리오. 최고의 성취를 눈앞에 두고도 부모의 마음을 채
자정이 넘은 시각, 한 학부모가 책상 위 서류 더미와 씨름한다. ‘2028학년도 의과대학 지역인재 특별전형 모집 요강 분석’. 열기는 입시 컨설턴트를 방불케 한다. 거주 기간, 출신 고교, 수능 최저 기준 등 복잡한 변수들을 조합하며 어떻게든 자녀를 이 좁은 문으로 밀어 넣으려는 필사적인 사투. 이것은 대한민국 상위 1% 가정이 마주한, ‘의대 외에는 답이 없다’는 강박이 만든 21세기 풍경이다.
이들의 불안은 계급의 대물림이 더는 보장되지 않는 사회, 오직 ‘의사’라는 면허증만이 불확실성을 제거한 유일한 자산이라는 믿음에서 비롯
2026학년도 의대 입시, ‘과탐 필수 폐지’라는 문구가 불러온 환호 뒤편에는 계산이 빠른 학부모들의 깊은 한숨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사회탐구 과목을 선택한 학생에게도 의대의 문이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막의 신기루와 같다. 가까이 다가가면 ‘가산점’이라는 거대한 모래 폭풍이 길을 막아서는 형국이다. 고려대, 성균관대를 비롯한 주요 사립 의대들이 과탐 응시자에게 부여하는 3~5%의 가산점은 합격선 근처에서 소수점 단위로 당락이 갈리는 최상위권 입시에서 사실상 넘을 수 없는 벽, 즉 ‘그림자 세금(Shadow Tax)’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