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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실력이 대학 운명 좌우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옆 스타벅스 2층.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박모씨(49)는 노트북 화면을 응시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화면에는 교육부의 '대학 알리미' 사이트가 떠 있었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의 취업률 84.2%(2024.2 기준), 평균 연봉 4,890만원(2023.12 취업자 기준)이라는 숫자가 깜박였다. 그 옆 탭에는 대치동 입시 카페의 '연대 경영 정시 362점 합격' 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열려 있었다. 박씨가 마주한 딜레마는 단순했다. 정부가 공개한

헤아 · 6분 읽기
교수 실력이 대학 운명 좌우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옆 스타벅스 2층.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박모씨(49)는 노트북 화면을 응시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화면에는 교육부의 '대학 알리미' 사이트가 떠 있었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의 취업률 84.2%(2024.2 기준), 평균 연봉 4,890만원(2023.12 취업자 기준)이라는 숫자가 깜박였다. 그 옆 탭에는 대치동 입시 카페의 '연대 경영 정시 362점 합격' 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열려 있었다.

박씨가 마주한 딜레마는 단순했다. 정부가 공개한 462페이지 분량의 '고등교육 성과 정보 체계' 보고서에는 온갖 수치가 나열돼 있지만, 정작 그 아들이 4년간 만날 교수들이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는 건물 면적(23,847㎡)과 도서관 장서 수(1,247,231권)는 알지만, 그 교수가 학생 개개인에게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는 몰랐다.

이 정보 공백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2025년 1월 발표한 '데이터 기반 대학 교육 혁신 모니터링' 연구를 보면,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6.2명으로 OECD 평균(15.7명)보다 0.5명 많다는 사실은 정확히 측정됐다. 하지만 그 16.2명 중 몇 명이 교수와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했는지, 그 교수가 학생의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냈는지는 어떤 통계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정부는 대학을 평가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데이터를 수집한다. 2024년 교육부가 발간한 '고등교육 성과 정보 체계' 보고서는 462페이지에 걸쳐 졸업률(87.3%), 중도 탈락률(4.2%), 전임교원 확보율(78.9%) 같은 지표들을 나열한다. 하지만 이 모든 숫자 뒤에 숨어 있는 핵심 변수 — 개별 교수의 교육 역량 — 는 여전히 블랙홀이다.

이 블랙홀이 만드는 왜곡은 생각보다 크다. 대학 평가에서 교수의 연구 실적은 SCI 논문 편수(2024년 기준 국내 대학 평균 교수당 1.7편)로 정량화되지만, 수업 실력은 학생 만족도 조사(5점 만점 평균 4.1점, 2024.1학기 기준) 정도로만 측정된다. 문제는 이 만족도 조사가 '재미있었나'를 묻지 '성장했나'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 학부모들은 대안 정보원에 의존한다. 대치동 학원가의 '연대 경영 정시 362점' 같은 한 줄 정보가 정부의 616페이지 통계보다 더 신뢰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부 데이터는 '무엇을'을 알려주지만 '어떻게'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박씨 같은 학부모는 그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은 알아도, 들어간 후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는 여전히 도박이다.

이 정보 비대칭이 만드는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입학 전 2년간 수능 점수를 0.1점까지 계산하며 대학을 선택하지만, 정작 그 대학에서 만날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입학 후에야 알게 된다. 2024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신입생 중 27.3%가 '기대와 다른 교육 환경' 때문에 전과나 편입을 고려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9년(19.8%)보다 7.5%p 증가한 수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구조가 '점수로만 아이를 평가하는' 교육 문화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교수의 교육 실력이 측정되지 않으니, 학부모들은 측정 가능한 것 — 대학 랭킹, 취업률, 연봉 — 에만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아이의 적성이나 성장 가능성보다는 '입학 가능한 최고 랭킹 대학'을 목표로 삼게 된다. 교육이 아이 맞춤형이 아니라 랭킹 맞춤형이 되는 순간이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교육의 질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교수별 '학생 성장 지수' — 입학 시 대비 졸업 시 역량 향상도 — 를 개발하거나, 졸업생들의 장기 추적 조사를 통해 '어떤 교수에게 배운 학생들이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미국 일부 대학은 이미 '가치 부가(value‑added)'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학생의 입학 시 역량과 졸업 시 역량을 비교해, 그 대학이 학생에게 실제로 부가한 가치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2023년부터 일부 대학이 '학습 성과 기반 평가(OBE: Outcome‑Based Education)' 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개별 교수 수준까지 내려오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결국 근본 해결책은 정보의 투명성이다. 대학이 교수별 교육 실적을 공개하고, 학생들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지금처럼 졸업 후에야 '좋은 교수를 만난 게 운이었다'고 말하는 구조로는 진정한 교육 선택권이 보장될 수 없다.

그 스타벅스에서 박씨는 결국 노트북을 덮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점수 올리기뿐이었다. 하지만 그 점수 뒤에 숨어 있는 진짜 교육의 품질은, 여전히 아무도 측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2024년 대한민국 입시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우리는 교육의 결과는 정밀하게 측정하면서,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은 여전히 블랙박스로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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