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전형이 사립학교 죽인다
2024년 11월, 서울 강남의 한 국제학교 입학 설명회장. 자녀의 유학 경험을 통해 일찍이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부모들은 정갈한 정장 차림으로 빈틈없이 좌석을 채웠다. 설명회 내내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는 ‘AI 역량’이었다. 학교 측은 자율주행 알고리즘 개발, 생성형 AI를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 등 미래 지향적 교육 과정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설명회장을 나서는 한 학부모의 얼굴에는 미묘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는 “AI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 어느 정도의 깊이와 차별점이 있는지는 모호하다”라며 “결국 학


2024년 11월, 서울 강남의 한 국제학교 입학 설명회장. 자녀의 유학 경험을 통해 일찍이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부모들은 정갈한 정장 차림으로 빈틈없이 좌석을 채웠다. 설명회 내내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는 ‘AI 역량’이었다. 학교 측은 자율주행 알고리즘 개발, 생성형 AI를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 등 미래 지향적 교육 과정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설명회장을 나서는 한 학부모의 얼굴에는 미묘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는 “AI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 어느 정도의 깊이와 차별점이 있는지는 모호하다”라며 “결국 학원가의 코딩 수업과 무엇이 다른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하였다. 이는 비단 한 개인의 우려가 아니다. 급변하는 교육 지형에서 자녀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학부모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본질적인 질문, 즉 ‘진정한 AI 역량’의 실체와 이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둘러싼 시대적 혼란의 한 단면이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 상승과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강력한 사회적 도구로 기능하였다. 명문대 진학, 대기업 입사라는 공식은 한 세대 이상 견고한 성공 방정식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 이후, 인공지능(AI)이라는 기술적 특이점이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지각 변동을 촉발하며 이 오래된 공식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AI 역량 평가가 강화되는 경향은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24년 3월 발표에서 AI, SW 특기자 전형 및 학생부종합전형 내 AI 관련 평가 항목을 강화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이는 정량화된 내신 성적이나 고전적 논술 능력만을 보던 과거의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AI 시대에 필요한 잠재력과 융합적 사고를 갖춘 인재를 선발하려는 대학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러한 변화는 학부모들의 교육 투자 심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4년 4월 20일 중앙일보 칼럼에서 입시 컨설턴트 박△△ 씨는 AI 관련 활동 준비 문의가 전체 상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는 AI가 단순한 스펙의 추가를 넘어, 자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역량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부와 교육 기관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시스템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4년 2월 발표된 ‘AI 시대 교육 혁신 방안’에 따라 초, 중등 AI 리터러시 교육을 필수화하고, 고등학교에서는 AI 선택 과목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더 나아가,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26년 대학 인공지능(AI) 기본교육과정 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덕성여대, 동국대 등 20개 대학에 2년간 연 3억 원씩을 지원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처럼 거대한 교육 생태계 전반에서 AI 교육이 핵심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역설적인 현실이 존재한다. 흔히 대중은 AI 전형 확대가 재정 및 교원 역량이 부족한 사립학교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일부 혁신적인 사립학교는 이러한 변화를 오히려 교육 특성화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한다. 일례로, 2024학년도부터 ‘AI 융합 교육 프로그램’을 전면 시행한 A 사립고등학교의 경우, 2025학년도 수시모집 AI 관련 특기자 전형 및 학생부종합전형 지원율이 전년 대비 25% 증가하는 성과를 보였다 (A 사립고등학교 입학처, 2024년 11월). 이는 선제적이고 본질적인 AI 교육 역량 강화가 사립학교의 생존을 넘어 새로운 경쟁 우위를 창출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학부모들이 흔히 직면하는 인식의 괴리는 '명문'이라는 전통적 브랜드 가치나 '좋은 내신'이라는 기존 지표가 여전히 대입 성공의 핵심 열쇠라고 믿는 통념에서 비롯된다. AI 교육 역시 단순히 코딩이나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 정도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다르다. AI 역량은 이제 특정 분야의 특기 사항이 아니라, 전 학문 분야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이자 대입 평가의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학들은 단순히 AI 기술을 '잘 다루는' 학생을 넘어, AI 리터러시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고 융합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잠재력' 있는 인재를 선발하고자 한다. 이는 AI가 더 이상 '무엇을 배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배울지'를 결정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 명문 학교라 할지라도 이러한 AI 교육 인프라와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면,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역할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결국 AI 전형의 확대는 사립학교를 특정 지점에서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AI 교육의 본질적 혁신을 외면하는 학교를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전통적 명문이라는 착시를 깨고 새로운 심판대 위에 세우는 냉정한 변별력을 제공한다. 교육의 'AI 지각변동' 속에서 학부모가 직시해야 할 현실은, 과거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입시 지도가 무용해지는 불확실한 바다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와 같은 교육기관을 분별하는 안목이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자녀의 입시 성공을 넘어,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유연한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본질적인 교육 가치를 찾아 나서는 고뇌를 의미한다. 전통적 지표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넘어, AI 시대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교육을 향한 심층적인 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