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아가 연재하는 책 'AI 시대의 대학 입시 해킹'의 1화다. 매일 아침 한 편씩, AI가 바꿔 놓은 미국 입시의 실제 작동 방식을 짚는다.

매년 가을,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학생들은 미국 대학이라는 문을 향해 지원서를 보낸다.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을 다듬고, 추천서를 챙기고, 성적표를 정리하는 모든 과정은 한 사람의 18년 인생이 담긴 기록을 또 다른 사람이 신중하게 읽고 평가할 것이라는 오랜 믿음 위에 있다. 그러나 2026년 입시를 기점으로, 그 믿음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지원서가 입학처 서버에 닿는 순간, 그 내용을 가장 먼저 훑어보는 '눈'은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변화를 상징하는 곳이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다. 버지니아 공대는 2025년 가을 학기 입시부터 지원자 에세이를 평가하는 1차 심사관 두 명 중 한 명을 AI admissions officer(인공지능 사정관)로 대체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¹. 이 결정은 단순한 업무 효율화 차원을 넘어선다. 과거 입학 사정이 전적으로 인간의 주관적 판단과 경험에 의존했다면, 이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평가 과정 깊숙이 개입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미국 상위권 대학 입학 사정의 규칙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버지니아 공대의 시스템은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인간 사정관과 AI 사정관은 각각 독립적으로 에세이를 평가해 12점 만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다. 만약 두 평가자의 점수 차가 2점 이상 벌어지면, 제3의 인간 사정관이 투입되어 최종 검토를 진행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¹.
1개월 — 버지니아 공대가 AI 심사 도입으로 단축한 합격 통지 기간. 수만 건의 지원서를 AI의 도움으로 신속히 처리해 합격 통지를 기존보다 한 달 앞당긴 1월 말에 가능하게 했다¹.
이 AI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공대는 지난 3년간 과거 합격자들의 에세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AI 모델을 훈련시켰다². 이 과정에서 학생의 이름이나 인종 같은 개인 식별 정보는 모두 제거해 편향 가능성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데이터는 외부 유출 없이 버지니아 공대 내부 슈퍼컴퓨터 센터에서 안전하게 처리된다². 대학 측은 자체 연구 결과 'AI 모델이 인간 평가자만큼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지만, 중요한 점은 AI가 에세이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길 뿐, 합격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종 결정 권한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있다². 그럼에도 AI가 매긴 점수가 인간 사정관의 판단에 미치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를 고려하면, 그 영향력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대학이 입학 사정에 AI를 도입하는 이유는 단순히 평가 속도를 높이기 위함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임무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확산된 '표절과 대필의 새로운 형태'를 가려내는 것이다. 챗GPT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을 활용해 에세이를 작성하는 행위가 보편화되면서, 대학들은 지원자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대학 지원의 표준 플랫폼인 커먼앱(Common App)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 2024년 사기 행위 정책(Fraud Policy)을 명확히 업데이트했다. 이 정책은 'AI 플랫폼, 기술, 또는 알고리즘의 실질적인 내용이나 출력을 자신의 작업물인 것처럼 제출하는 행위'를 명백한 부정행위로 규정한다⁵. 이는 커먼앱을 사용하는 모든 회원 대학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강력한 규정으로, AI 생성물을 거의 그대로 제출하면 입학 취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버지니아 공대의 AI 사정관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AI는 문법 오류나 어색한 표현을 찾는 수준을 넘어선다. 수많은 LLM 생성 텍스트의 패턴, 자주 사용되는 상투적 구문, 인간의 글쓰기 방식과 미묘하게 다른 통사 구조 등을 감지하도록 훈련되었다. 인간 사정관이 지원자의 '목소리(voice)'와 '진정성'을 평가한다면, AI 사정관은 그 목소리가 기계의 메아리는 아닌지 교차 검증하는 필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언어적 동질화(Homogenization) — 코넬·카네기멜런대 공동 연구에서 밝혀진 현상. AI로 에세이를 수정한 저소득층(fee waiver 수혜자) 및 최종 불합격자 그룹에서 이 경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⁶
최근 코넬 대학교와 카네기 멜런 대학교의 공동 연구는 AI 활용 에세이가 낳는 결과를 명확히 보여준다.⁶ 연구진이 한 최상위권 대학에 4년간 제출된 수만 건의 에세이를 분석한 결과, AI 사용 이후 에세이들 사이에서 '언어적 동질화(homogenization)' 현상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경향이 글쓰기에 자신감이 없거나 충분한 지도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AI의 도움으로 에세이를 '상향 평준화'하려 할 때 더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물은 개성을 잃은 판에 박힌 글이 되고, 입학사정관은 바로 그 '기계적인 평범함'을 부정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에세이 평가를 넘어, AI는 입학 사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작업 중 하나인 성적표(transcript) 분석에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 수만 개 고등학교에서 발행된 각기 다른 형식의 성적표를 일관된 기준으로 비교하는 일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작업이다. 한국의 9등급제, 미국의 4.0 만점 GPA, 영국의 A-Level, 국제 표준인 IB 점수 등 각기 다른 체계와 과목 난이도, 학교별 명성(school profile)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 작업의 상당 부분이 숙련된 입학사정관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 이 영역 역시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South Carolina) 연구팀이 개발한 다중 AI 에이전트 시스템은 각기 다른 양식의 성적표를 96.7%의 정확도로 자동 처리하며, 한 건 검토 시간을 기존 30분에서 45초로 단축시켰다⁷. 마치 여러 나라의 화폐를 하나의 기준 통화로 환산하듯, 이 시스템은 GPA를 대학의 기준에 맞게 자동으로 **정규화(normalization)**하는 기능까지 포함한다⁷.
이러한 기술은 더 이상 일부 대학의 실험적인 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에드바이절리(EdVisorly)의 '에디AI(EddyAI)'와 같은 상용 서비스는 여러 대학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다양한 교육 기관에서 발행한 성적표를 처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⁸. 입시 산업 차원에서 학생들의 성적표가 보이지 않는 AI의 손에 의해 표준화되고 재가공되는 과정이 이미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적표 정규화에는 잠재적 위험도 따른다. AI는 과거 합격자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데이터에 특정 국가나 학교 유형에 대한 편향이 존재했다면 AI는 그 편향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증폭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데이터에서 특정 AP 과목이 합격에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면, AI는 해당 과목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반면 한국의 심화선택과목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버지니아 공대가 개인정보를 제거하고 내부 서버를 고집하는 이유도 이러한 편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지만², 훈련 데이터 자체에 내재된 편향을 완벽히 제거하기는 어렵다.
버지니아 공대의 사례로 대표되는 AI 사정관의 등장은 한국 학생과 학부모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막연한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된 규칙을 이해하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명확한 신호다. 두 가지 핵심 시사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에세이의 '진정성'과 '개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AI가 동질화된 문장 패턴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하는 이상, 템플릿에 의존하거나 생성형 AI로 초안을 쓴 에세이는 1차 심사에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을 위험이 크다⁶. 특히 한국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미사여구나 상투적인 성공담, 추상적인 다짐 등은 AI가 '기계적'이라고 판단하기 가장 쉬운 대상이 된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문체가 아니라, 학생 본인만이 겪은 구체적인 경험, 그를 통해 얻은 독창적인 깨달음, 그리고 이를 자신만의 투박하지만 진솔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능력이다.
둘째, 학생의 GPA가 AI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중요해졌다. AI 기반 성적표 정규화는⁷ 더 이상 개별 사정관의 주관적 해석에 기댈 수 없음을 시사한다. 알고리즘은 제출된 고등학교 프로필, 과거 지원자 및 합격자 성적 분포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의 성적을 계량적으로 변환한다. 이는 학교의 성적 체계와 교과 과정의 우수성을 객관적 데이터로 증명하는 '스쿨 프로필'의 역할이 학생 개인의 GPA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의 성적표는 AI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이 자동화된 평가 기준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걸까?
이 글은 연재의 일부다. 내용은 공개 1차 출처를 기반으로 하며, 개별 입시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점수 너머, 아이만의 프로젝트로 지원 서사를 설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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