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가 연재하는 책 'AI 시대의 대학 입시 해킹'의 12화다. 매일 아침 한 편씩, AI가 바꿔 놓은 미국 입시의 실제 작동 방식을 짚는다.


헤아가 연재하는 책 'AI 시대의 대학 입시 해킹'의 12화다. 매일 아침 한 편씩, AI가 바꿔 놓은 미국 입시의 실제 작동 방식을 짚는다.
지난 10년간 ‘의미 있는 과외 활동’의 정의는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학생회장 경력, 비영리 단체에서의 꾸준한 봉사 시간, 혹은 권위 있는 여름 캠프 수료증이 그 기준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26년 입시 지형도에서 이러한 활동들은 더 이상 결정적인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 이제 대학은 학생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 한 고등학생의 프로젝트가 있다. 시두 파치팔라(Siddhu Pachipala)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소셜 미디어에서 자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이는 단순한 과학 경진대회 출품작을 넘어, 실제 사회 문제에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한 강력한 증거, 즉 ‘검증 가능한 결과물(verifiable artifact)’의 전형을 보여준다.
시두 파치팔라가 개발한 SuiSensor는 그가 직접 코딩하여 만든 프로그램의 이름이다.¹ 이 도구는 Natural Language Processing(자연어 처리, NLP)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NLP는 인간의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AI의 한 분야로, SuiSensor는 이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게시물에 숨겨진 미묘한 언어 패턴을 식별한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명확했다. 정신 건강 위기, 특히 자살 충동을 겪는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기는 익명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공개된 온라인 플랫폼 레딧(Reddit)의 정신 건강 관련 포럼에서 익명화된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하여 모델을 훈련시켰다.²
그 결과는 놀라웠다. SuiSensor는 잠재적 자살 위험을 나타내는 텍스트를 식별하는 데 있어 98%에 가까운 정확도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성취를 넘어, AI가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유수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그는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기회까지 얻었다.³
98% — 고등학생이 개발한 AI 모델이 온라인 텍스트에서 자살 위험 신호를 감지해낸 정확도. 이는 기존의 키워드 기반 감지 시스템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입학사정관의 관점에서 SuiSensor는 단순한 수상 경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학생이 세상의 문제를 깊이 통찰하고, 스스로 학습하여 기술을 익혔으며, 그 기술을 적용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소비하는 학생이 아니라, 창조하는 학생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지표인 셈이다.
많은 학부모들은 SuiSensor 같은 프로젝트가 특별한 영재나 코딩 천재만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작 과정을 단계별로 분해해 보면, 올바른 방향성과 꾸준한 노력만 있다면 한국 학생들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네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데이터 수집 및 정제다. 파치팔라는 정신 건강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만 건의 공개 게시물을 수집했다. 여기서 핵심은 개인정보를 식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철저한 익명화 과정이었다. 윤리적 데이터 처리는 프로젝트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⁴
두 번째 단계는 적절한 도구의 선택이다. 그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다. 파이썬(Python) 프로그래밍 언어를 기반으로, spaCy나 NLTK와 같은 오픈소스 NLP 라이브러리를 활용했다. 이는 잘 갖춰진 공방의 전문 장비를 빌려 쓰는 것과 같다. 최근에는 Hugging Face 같은 플랫폼을 통해 사전 훈련된 강력한 언어 모델들을 누구나 쉽게 내려받아 자신의 프로젝트에 맞게 미세 조정(fine‑tuning)할 수 있다.⁵
세 번째 단계는 모델 학습과 검증이다.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해 AI 모델이 어떤 언어 패턴이 위험 신호와 관련 있는지 학습시키는 과정이다. 그는 데이터를 '학습용'과 '검증용'으로 나누어, 모델이 학습하지 않은 새로운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지 반복적으로 테스트했다. 98%라는 정확도는 바로 이 검증 과정에서 나온 객관적인 수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네 번째 단계는 윤리적 성찰이다. 기술은 완성되었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만약 AI가 누군가를 '위험'하다고 잘못 판단하면(false positive) 어떻게 될까? 이 기술이 감시의 도구로 악용될 소지는 없을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은 기술자를 넘어 성숙한 문제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⁶

이 네 단계는 단순히 코드를 짜는 능력을 넘어서는 종합적인 역량을 요구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데이터를 윤리적으로 다루는 책임감, 적합한 도구를 찾아 학습하는 자기주도성, 그리고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깊이 고민하는 비판적 사고력이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학이 찾고 있는 21세기형 인재의 모습이다.
SuiSensor와 같은 강력한 ‘검증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입시의 절반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학생은 이 경험을 한 편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직조하여 대학 지원 에세이에 담아내야 한다. 기술적 성과를 나열하는 것과 그것을 통해 자신의 성장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다.
실패하는 에세이는 주로 프로젝트의 기술적 측면을 설명하는 데 그친다. ‘저는 spaCy 라이브러리를 사용해 텍스트를 토큰화했고, 순환 신경망(RNN) 모델을 구축하여 98%의 정확도를 달성했습니다.’와 같은 서술은 입학사정관에게 학생이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그 학생’이어야 하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성공적인 에세이는 ‘왜(Why)’에서 출발한다.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친구의 경험 때문이었나, 아니면 사회 현상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 때문이었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주했던 가장 큰 기술적 난관은 무엇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모델의 정확도가 처음으로 90%를 넘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10,000+ — SuiSensor 모델 학습에 사용된 레딧(Reddit)의 익명화된 정신 건강 관련 게시물 수. 이 숫자는 프로젝트의 규모뿐만 아니라,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학생의 윤리적 책임감을 시사한다.
특히 파치팔라의 사례에서 빛을 발하는 부분은 기술적 성취와 윤리적 고민 사이의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 영향력에 대한 희망과 함께, 오용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다.⁷ 이는 지원자가 단순히 똑똑한 코더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기술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깊이 성찰하는 책임감 있는 혁신가임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결국 에세이는 차가운 기술 보고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지적, 인격적 성장을 담아내는 따뜻한 서사여야 한다. 프로젝트는 그 서사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물증의 역할을 한다. 우리 아이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이런 관점에서 되돌아보고 그 의미를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학부모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SuiSensor의 사례가 감명 깊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어로 된 데이터를 다루는 미국 학생 이야기’라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 한국 학생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기회가 숨어있다. 전 세계적으로 NLP 기술 연구가 영어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한국어와 관련된 문제 해결에 있어 아직 탐험되지 않은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한국 학생이 도전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는 한국어 데이터셋을 탐색하는 것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AI 허브(AI‑Hub) 와 같은 플랫폼에는 뉴스 기사, 웹 데이터, 감성 대화 등 다양한 종류의 한국어 텍스트 데이터가 공개되어 있다.⁸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기업들도 연구 목적으로 한국어 자연어 이해(NLU) 데이터셋인 KLUE(Korean Language Understanding Evaluation) 등을 공개하며 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다.⁹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해 SuiSensor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구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판 데이터를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하며) 분석하여 사이버 불링이나 우울감의 언어적 징후를 탐지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복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한 독창적인 프로젝트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거창한 모델을 만들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주제의 한국어 뉴스 기사 수백 개를 모아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긍정/부정 톤을 분석하는 간단한 감성 분석(sentiment analysis) 프로젝트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 작은 성공의 경험이 더 복잡하고 의미 있는 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과 기술적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실행력과 그 과정에서 배우는 문제 해결 능력이다. 영어권 학생들과 똑같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절실한 '한국의 문제'를 AI라는 새로운 언어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 아이를 가장 독창적인 인재로 빛나게 할 것이다.
SuiSensor와 같은 프로젝트는 AI 시대의 과외 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단순 참여가 아닌 창조, 스펙 나열이 아닌 문제 해결의 증거를 만들어내는 것. 그렇다면 코딩에 재능이 없는, 인문사회나 예술 분야에 열정을 가진 학생들은 이 새로운 규칙 앞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검증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글은 연재의 일부다. 내용은 공개 1차 출처를 기반으로 하며, 개별 입시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점수 너머, 아이만의 프로젝트로 지원 서사를 설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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