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가 연재하는 책 'AI 시대의 대학 입시 해킹'의 14화다. 매일 아침 한 편씩, AI가 바꿔 놓은 미국 입시의 실제 작동 방식을 짚는다.


헤아가 연재하는 책 'AI 시대의 대학 입시 해킹'의 14화다. 매일 아침 한 편씩, AI가 바꿔 놓은 미국 입시의 실제 작동 방식을 짚는다.
지난 10년간 ‘코딩’은 이공계 지망생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정신건강 앱을 만들고, 산불을 감지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동안, 역사나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AI 시대는 이러한 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026년 입시의 현실은 정반대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AI는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에게 역사와 사회의 거대한 문서를 분석하고,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시스템적 패턴을 발견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현미경’이 되었습니다. 기술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인문학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술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학생이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데이터’로 과거를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미국의 Redlining(레드라이닝) 정책 연구입니다. 레드라이닝은 1930년대 미국 정부 산하 주택소유자대출공사(Home Owners' Loan Corporation, HOLC)가 주도한 부동산 관행으로, 특정 지역을 주택 담보 대출에 ‘위험’하다고 분류하여 사실상 대출을 막아버린 제도입니다.¹
이 결정의 근거는 소위 HOLC 지도에 남아 있습니다. 이 지도들은 도시의 각 구역을 녹색(최고 등급)부터 빨간색(가장 위험)까지 네 가지 색으로 칠했습니다. 문제는 그 평가 기준이 인종과 민족 구성에 깊이 의존했다는 점입니다. 흑인이나 이민자 커뮤니티는 거의 예외 없이 ‘빨간 선’ 안쪽에 갇혔고, 이는 수십 년에 걸친 부의 불평등과 도시 슬럼화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과거 역사학자들은 소수의 문서와 증언을 통해 레드라이닝의 해악을 주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리치먼드 대학의 ‘Mapping Inequality’ 프로젝트는 미국 200여 개 도시의 HOLC 지도를 모두 디지털화하여 거대한 데이터셋으로 만들었습니다.² 이제 학생들은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당시의 평가 보고서를 클릭 몇 번으로 접근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0개 도시 — 'Mapping Inequality' 프로젝트가 디지털화한 HOLC 레드라이닝 지도의 수. 수만 페이지의 문서가 이제 클릭 몇 번으로 분석 가능한 데이터셋이 되었습니다.²
이것은 더 이상 몇몇 역사가의 주장이 아닙니다. 인종 차별이라는 사회적 병리가 어떻게 국가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시스템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차가운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도구가 바로 인문학도의 새로운 무기, AI입니다.
많은 학부모님들은 AI를 활용한 데이터 분석이 최상위권 컴퓨터 과학 영재들만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이제는 복잡한 코딩 없이도 강력한 텍스트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도구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개발한 Voyant Tools 같은 웹 기반 분석 도구는 수백 페이지의 문서를 업로드하기만 하면 단어 빈도, 연관 관계 등을 즉시 시각화해 줍니다.³ 더 나아가 파이썬(Python)의 간단한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면, 학생들은 훨씬 더 깊이 있는 분석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최고 수준의 프로그래밍 기술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핵심 AI 기술 몇 가지를 학부모님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Named‑entity recognition(NER, 개체명 인식)입니다. 이는 수천 개의 문서에서 특정 인물, 장소, 기관명을 자동으로 식별하고 태그를 붙이는 기술입니다. 마치 수백 명의 연구 조교가 동시에 문서를 훑으며 중요한 고유명사를 전부 찾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는 Topic modeling(토픽 모델링)입니다. HOLC 평가 보고서 수만 건을 AI에게 학습시키면, AI는 문서 전체를 관통하는 숨겨진 주제들을 스스로 찾아냅니다. 예를 들어, ‘이민자 유입’, ‘주택 노후화’, ‘공공시설 부족’과 같은 핵심 주제들이 어떤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는지 통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역사적 문서를 질적 해석의 대상에서 양적 분석의 대상으로 전환시킵니다. HOLC 평가관들이 남긴 ‘불안정한’, ‘위협적인’ 같은 주관적 표현의 빈도를 측정하고, 그 단어들이 특정 인종 그룹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복원하여 당시의 색을 찾아내는 것처럼, 텍스트 뒤에 숨겨진 시대의 편견을 숫자로 복원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진정한 가치는 대학 지원 에세이에서 드러납니다. 학생은 자신이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를 나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발견’했고, 그 발견이 자신의 생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파이썬을 이용해 토픽 모델링을 수행했습니다”라고 쓰는 대신, 이렇게 써야 합니다. “데이터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HOLC 평가관들이 녹색 등급 지역을 묘사할 때는 ‘안정성’, ‘동질성’ 같은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적색 등급 지역의 보고서에서는 ‘침투’, ‘전이’ 같은, 마치 질병의 확산을 막으려는 듯한 언어가 지배적이었습니다.”⁴
이 한 문장은 학생이 단순히 기술을 사용한 것을 넘어, 데이터 속에서 언어가 어떻게 사회적 편견을 구축하고 정당화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심지어 문학 비평까지 아우르는 융합적 사고의 증거입니다. 입학사정관은 코딩 실력 자체보다, 데이터를 통해 시스템적 불의의 작동 방식을 꿰뚫어 본 학생의 지적 여정에 감동합니다.
74% — 1930년대 레드라이닝 지역에 거주하던 소수 인종의 평균 비율. 학생의 AI 분석은 이 숫자가 어떻게 정책적 언어와 행정적 결정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¹
결국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 주장인 ‘소비자에서 창조자로(Reading vs. Building)’의 인문학적 버전입니다. 레드라이닝에 관한 책을 100권 읽는 것보다, 직접 원자료를 분석해 자신만의 작은 발견을 해내는 경험이 학생을 비교 불가능한 지원자로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 예상치 못한 발견, 그리고 그로 인해 갖게 된 새로운 질문이야말로 최고의 에세이 소재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학생들은 이와 같은 프로젝트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레드라이닝 사례가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미국의 역사적 맥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학생들은 우리 주변의 데이터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한국 근현대사 기록물에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이나 각 지역의 기록물 관리 기관이 디지털화한 방대한 자료는 아직 탐사되지 않은 보물창고입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 관련 문서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 관련 정부 보고서를 텍스트 데이터로 분석하여, 당시 정책 결정의 언어적 특징이나 지역별 차이를 밝혀내는 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도시 정책 및 개발 데이터입니다. 서울시의 ‘서울 정보소통광장’이나 각 지자체가 공개하는 공공데이터 포털에는 지난 수십 년간의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 재개발 계획안 등이 축적되어 있습니다.⁵ 학생은 특정 지역(예: 강남 개발 초기)의 정책 문서를 AI로 분석하여, ‘발전’과 ‘성장’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며 도시의 모습을 바꾸었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접근법은 국가통계포털(KOSIS)과 언론 기사 데이터를 결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통계청이 발표하는 청년 실업률 데이터의 변화 추이와 지난 20년간 관련 신문기사 수십만 건을 비교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N포 세대’, ‘헬조선’과 같은 신조어가 등장한 시점과 실제 경제 지표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그리고 언론이 사회 문제를 어떤 프레임으로 다루어 왔는지를 밝혀낼 수 있습니다.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은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에세이는 수천 편을 읽었을지 몰라도, 서울의 도시 재개발 계획 속에 숨겨진 언어적 패턴을 데이터로 분석한 학생은 처음 볼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학생의 프로젝트는 단순한 과외 활동을 넘어, 그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지적 ‘스파이크’가 됩니다.
이처럼 데이터로 무장한 인문학 프로젝트가 학생의 지적 호기심을 증명했다면, 이제 입학사정관의 눈은 그 결과물이 담긴 ‘증거’ 그 자체로 향합니다. 과연 학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물은 어떤 형태로, 어떤 플랫폼 위에서 가장 강력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이 글은 연재의 일부다. 내용은 공개 1차 출처를 기반으로 하며, 개별 입시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점수 너머, 아이만의 프로젝트로 지원 서사를 설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이 글이 도움이 되셨나요?
라운지에서 진짜 경험과 고민을 나눠보세요. (익명 보장)
댓글 불러오는 중...
아침 브리핑, 이메일 열어보기 전에 알림으로 먼저 받아보시겠어요?